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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합기도 후기

당연한 것은 없다.!

아이키도를 시작하고 나서, 가토리신토류에 입문하기 전 오월당에서 열리는 바베큐 파티 사진을 보며 혼자 속상해하고 있을 때 예전에 지부장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시간이 많다 하더라도 명분이 없다면 갈 수 없는 것. ]

승단하고 나서야 입문할 수 있었던 가토리신토류, 초단에 승단하고 나서도 많은 고민에 휩싸였다.
검술에 대해서는 유독 엄격하고 입문하고 나서는 개개인의 이유로 탈퇴가 안되며, 개인의 실수가 제주도지부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단순히 하고 싶다 해서 그래 너 해봐 하고 간단히 입문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지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할 문제였다.
그 당시 계속 고민하고 있던 내게 경섭오빠가 얘기해주었다.

[ B와 D 사이 C ]
Birth 세상에 태어나서 Death 죽기 전 사람들은 Choice 선택을 한다고.

한번뿐인 네 인생 네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하면서 살라고.
그 말에 용기를 얻고, 가토리에 입문하기로 결정하였다.
내가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무엇을 원했었는지 잊지말자고 끈을 놓지 않고 걸어가다 보면 길이 보이겠지 미리 겁먹고 도전하기도 전에 포기는 하지 말자며 마음을 다잡았다.
오모테노타치를 다 외우고, 보주츠 조금 나갔을 무렵 처음 참석한 가토리세미나.
그리고 다음해인 15년 2월 처음 참석한 제9회 일중우호연무대회. 나기나타 1번을 시작하던 때라 버벅대며...
오모테노타치 또한 버벅대기 일쑤.
외우고 있다고 생각한 카타였는데, 면허센세들 앞에 서니 눈 앞이 하얘져서 그다음 동작이 생각이 나지 않고,
옆에서 이거 이거라고 동작을 가르쳐줘도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런 기분....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면허센세들과 함께하며 가야할 곳이 너무나 높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높게만 보이던 목록이었는데 그 곳에선 최소 목록이었다.
그 곳에서는 목록은 말할 것도 없고 교수면허를 가지고 있는 센세들도 너무 많았다.
나는 우물안 개구리처럼 너무나 작은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을 무렵 박지도원님께서 여기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기운을 얻고 간다며, 일본에 오지 않은 사람들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많이 배울 것이라고, 전보다 나아진 것 같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그래서 다시 제주도로 돌아가면 전보다는 조금은 나아진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부터가 내 슬럼프의 시작이었다.
나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왜 전보다 못하냐는 소리를 들을까봐 두려워졌다.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점점 주눅들었다.
일본에서는 그리 많던 면허와 목록들이여서 상대적으로 낮게 보였던 목록이었는데, 여기 돌아오니 목록은 여전히 높은 위치였다. 카타를 외우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그 때.. 16년도에 희야언니, 시연언니가 목록을 받고, 송지도원님께서 교수면허를 받은 다음해인 17년도에 제 10회 중일우호연무대회가 열렸다.
설연휴와 겹치기도 하였고, 그 달에 결혼을 하는 두 명의 휴가자가 있어 휴가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였다.
좋은 핑계이기도 했다.
사실 두려웠다.
2년 전 그때가 다시금 떠올랐다.
이제야 겨우 슬럼프에서 벗어나나 했는데, 다시 일본에 가게 된다면 다녀오고 나서 검술을 할 자신이 없었다.
여전히 나아지지 않은 내 모습에 좌절하고 실망하며 검술을 하고 싶은 의지까지 상실할 것 같았다.
직접 가서 축하를 못해주는 것이 아쉽지만, 오래도록 검술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 며 비겁하게 피해버렸다.
그리고 17년도에 있던 가토리신토류 세미나.
오월당에서 매년 하던 세미나와 달리 서울에서 진행되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카타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아쉬웠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지부장님께서 이번년도부터는 목록 추천제 없이 실력으로 쟁취하라고 하셨는데, 스가와라 선생님 앞에서 카타를 해보았지만 선생님의 눈에 들지 않았다.
16년도 세미나때 선생님께서 목록 준비하는 사람 위주로 나와서 검술 하라고 하였을 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뒤로 빠져 있어서, 그래서 내 실력을 보일 기회가 없었다는 내 생각은 그저 합리화일 뿐이었다.
[노력하지 않은 자의 자기합리화] 17년도 세미나 전부터 줄곧 연습은 했지만 아직 한참 모자랐다.
시연선배와 송지도원님께서 많이 알려주셨는데 나 이제껏 뭘 익혔던 거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못 알고 있는 동작들이 많았다.
18년도 세미나는 스가와라 유지 선생님께서 오셔서 치뤄질 예정이라 하였다.
드디어.. 드디어 기대해 봐도 될까 라고 생각했다.
섣부른 생각이었을까. 자만심 때문이었을까.. 그 무렵 할아버지께서 입원하셨다. 가벼운 복통인 줄 알았는데, 상황은 심각했다.
췌장암 말기로 언제 안 좋아지실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세미나가 치뤄지기 며칠 전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셔서 1인실로 옮기게 되었다.
예전부터 지부장님께서 승단심사 등의 중요한 일이 있으면 꼭 그 일이 본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시험해보는 일이 생긴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어렴풋이 상상해본 적이 있다.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하고. 결론을 내지 않은 상태로 상상을 끝냈지만 상상 속에서라도 당연히 가족을 택했어야했는데, 그 선택이 빠르지 않아 벌을 받고 있는 걸까... 1인실로 옮긴 날 할아버지 상태를 보러 갔던 때 아빠가 말씀하셨다.
미안하다. 며칠 전 할아버지 상태가 안정적으로 보여서 세미나가 치뤄질 동안은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 세미나에 참석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안될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병원 비상구 계단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할아버지 상태가 안좋아지신 것만으로도 속상한데, 지금 이런 걸로 더 속상해하고 고민하고 있는 내 자신이 미웠다.
그 때 알았다.
내가 참석하고 싶다고 참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참석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라고 왜 당연하게 매년 그 세미나를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마음만은 같이 세미나에 가고 싶어 비행기표도 취소하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같이 하고 싶었다.
세미나 전날까지는 안 좋으셨지만, 세미나 당일부터는 오히려 괜찮았다.
그러니 오히려 세미나가 끝나고 나서 후회가 남았다.
다녀와도 되지 않았을까.. 하고. 그말을 듣고 지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넌 왔어도 집중하지 못했을 거라고, 계속 핸드폰만 잡고 있었을 것이라며 마음은 그 곳에 있었을 것이라고. 집중하지 않고 혹여나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실력을 그 탓으로 돌릴 것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그 다음 달 우리 곁을 떠나셨다.
여러 가지 감정이 뒤엉켜왔다. 속상하고, 화나고 그 모든 것에 죄송하고. 그 전까지 잘 잡고 있던 끈을 놓아버렸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허무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늘 궂은 일 마다 않고 인내하시는 삶만 사셨는데, 난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앞으로는 내가 할 말 다 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고 말 것이라고. 다음 해 2월에 열린 11회 중일 연무대회 2년 전 비겁하게 피해버린 그 일 이후 후회했다.
슬럼프를 겪더라도 갔다 올 걸 하고.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참석하기로 했다.
일중우호연무대회에서는 목록증서를 직접 수여받게 되는데, 다희선배, 창효오라버니, 정주원지도원님께 진심을 담아 축하를 하면서도 작년에 같이 세미나에 참석했더라면 저 자리에 같이 있을 수 있었을텐데 하며... 마음 한 켠에서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시작한 지 2년 조금 넘은 외국의 한 회원이 목록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된 후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해 10월. 한없이 떨렸던 작년. 세미나 전에 무슨 일이 생겨서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들었다.
참석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여전히 많이 부족한 실력이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다.
 


내가 아이키도보다 검술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실력이 연습량에 비례해서이다.
아이키도는 특유의 운동신경, 감각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운동치인 나로써는 연습하면 앞지를 가능성이 있는 검술이 좋았다.
물론 그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고 연습을 하지 않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단점 카타라는 것이 정해진 대로만 외우기만 해서 끝이 아니라 외우는 것은 기본이고, 그 이후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알면 알수록 하면 할수록 더 어려운 것 같지만 그만큼 더 성취감 있는 이 검술을 나는 좋아한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목록을 하사하신 스가와라 선생님, 추천을 허락해주신 윤선생님, 그리고 지도해주신 지부장님 및 지도원님, 도우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한걸음씩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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